역대 '최약체 여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국민의힘이 총선 패배 석 달만에 새로운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를 앞두고도 연일 내홍에 휩싸이면서 여권 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동훈·원희룡 후보 등 당권주자들의 과도한 네거티브 공방이 불러온 '혐오의 정치'가 폭발하면서 급기야 지난 15일 충청권 합동연설회에서는 후보자 지지자들 간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무능과 무기력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던 여당의 전당대회가 민생·미래비전·정책은 실종되고 내부 총질과 다툼만 난무하는 108석 정당의 한심하고 볼썽사나운 '난장판 대회'로 전락한 것이다.

이처럼 존재감 없는 집권여당이 한심한 작태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일찍부터 여당을 패싱한 거대 야당은 '해병대원 특검법'을 앞세워 윤설열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특검법은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여당 분열과 윤 대통령 탄핵을 노리는 거대 야당의 치밀한 전략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줄곧 민심의 역풍(거야 심판론)만 외치면서 정부·여당에 실망한 보수층의 이탈을 가속화 시키는 모양새다.

이번 여당의 전당대회는 거대 야당을 상대로 정치력을 발휘해 난국을 타개할 전략과 투지, 대안을 제시할 새로운 당대표를 뽑는 선거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30%를 오르내리는 레임덕 위기에 처한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를 성공 시키고, 무너져가는 보수와 이탈하는 민심을 결집해 민주당에 맞서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문제는 당원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는 영남, 그중에서도 보수정치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대구·경북(TK)이 정신을 못차리면 여당이 망할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윤석열 정부에 실망한 다수의 수도권 보수 원로들은 TK를 '갈라파고스 신드롬'에 비유한다.

갈라파고스는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에 있는 에콰도르령 제도의 16개 화산섬과 주변 암초로 암초로 이뤄진 섬으로, 독특한 생물들 모두가 외부와의 단절의 대가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자신들의 표준만 고집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고립되는 현상을 뜻하며, 외부 세계와 담을 쌓으며 60여 년 폐쇄사회를 지켜온 북한 사회를 '현대판 갈라파고스 섬'으로 부르기도 한다.

TK를 세상이 변하는 것을 모르는 과거 의리와 영화(榮華)에 젖어 있는 진화를 모르는 집단으로 보는 것이다.

과거 TK는 한국 정치사에 빼놓을 수 없는 1996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돌풍(15대 총선)의 진원지였다.

TK 맹주로 인식되던 당시 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대구지역 13석 중 자민련이 8석을 싹쓸이하면서 원내 1당은 차지했지만, 과반의석 달성에는 실패했다.

대구가 안일했던 보수 정당을 긴장시키며 전국 정치권의 균형자 역할로 부상한 계기가 됐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TK는 갈라파고스 섬처럼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당선되고 이름도 낮설은 낙하산 인사가 내려오면 눈을 감은 채 몰표를 몰아주는 '보수 꼴통'의 성지로 변질됐다.

그 결과 상황이 비슷한 호남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끈끈한 유대와 결집으로 민주당의 몸통을 자부하며 실속을 챙기고 있지만 TK는 계파도 없고, 발전도 없는 정치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국회에 입성한 무능력·무기력한 현역들도 굳이 주민(유권자)들의 눈치를 살피며 중앙에서 예산을 따올 이유도 없다. 4년 가까이 존재감 없이 개인 실속만 챙기다 공천 시즌이 오면 당 권력자에 빌붙어 재공천만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난장판으로 변질된 작금의 여당 정치판에서 이번 전당대회는 누가 당 대표가 되더라도 당이 사분오열(四分五裂)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동훈 후보가 선출되면 반윤계와의 갈등으로 내홍이 심화될 우려가 있고, 원희룡 후보가 당선되면 윤설열 정부의 아바타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 미래와 당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TK가 깨어나야 한다. 소위 보수 원조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윤 대통령이 대구 서문시장에 와서 '기 받으러 왔다'고 너스레를 떨면 이제는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고, 잘못하면 망신 당하고 갈수 있다는 경고도 줘야 한다.

특히, 윤석열 정부에서 특혜를 받은 젊은 정치인(조지연, 강명구 등)들은 TK와 정치권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전면에 나서야 한다. 벌써부터 자기 영달을 위해 몸을 사리는 모습은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  

TK를 대변하는 원로 보수와 토호세력도 자신들의 영리(營利)를 위해 정치를 망가뜨리지 말고, 시·도민들도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총선은 끝이 났지만 실리와 실속을 챙기면서 다음 지방선거를 대비하고, TK를 대변할 수 있는 젊은 정치인도 키워야한다.

TK가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